프랑스-러시아 문화 토포스 비교 사전 상세보기
권태
범주명 인간과 정서
토포스명(한글) 권태
토포스명(프랑스) ennui
토포스명(러시아) скука
정의 1.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느낄수록 권태는 깊어진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프랑스)   권태 또는 지겨움을 뜻하는 프랑스어 ‘앙뉘 ennui[ɑ̃nɥi]’는 라틴어 ‘inodiāre’(거리끼다, 미워하다)에 어원을 두고 있다. 삶의 지루함, 삶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 유명한 라틴어 문구 ‘tædium vitæ [tedjɔmvite]’(세네카,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 50년경)에서 ‘tædium’ 또한 피로감, 권태, 혐오감을 뜻하는 말로 영어 ‘tedium'의 어원이다. 권태를 뜻하는 두 라틴어는 모두 혐오감과 관련이 있다. 
  프랑스어 앙뉘는 누군가를 잃거나 희망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비탄 내지 깊은 상심의 의미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강한 그리움, 향수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데, 무력감이나 단조로움, 무관심에 의해 생겨난 공허감, 싫증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13세기경으로 보인다. 
  권태는 일반적으로 상황에서 비롯된 단순한 권태와 실존적 권태로 나눈다. 자동차를 타고 끝없는 사막을 질주할 때 느끼는 피로감과 지루함은 단조로운 상황이 초래하는 단순한 권태이다. 또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음악이라도 지나치게 반복하면 질려서 오히려 싫어하게 될 수 있다. 이런 단순한 권태가 일상의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라면, 실존적 권태는 인간의 존재 조건과 관련된다. 실존적 권태는 무한과 영원의 관념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한 삶에서 느끼는 무의미, 공허감에서 비롯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전도서」, 1장)라는 구절은 삶의 근원에 권태가 놓여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신들은 지루해서 인간을 창조했다. 혼자인 아담은 지루했고 이를 보신 하느님이 이브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이 세상에 권태가 존재했고 인간 집단이 커질수록 권태의 크기도 커졌다”(『이것이냐 저것이냐』, 1843)는 키르케고르의 주장은 태초에 권태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니체 또한 하느님이 이레째 되는 날부터 지루해했고, 신들도 권태만큼은 버거워서 싸워보기는 하지만 번번이 지고 말았다는 말로 권태의 근원적 성격을 설명한 바 있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878~1880, 『적그리스도』, 1888)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아담과 이브가 신이 충만하시어 다른 감각이나 의미가 궁금해질 여지가 없는 낙원에서 왜 인식의 나무 열매를 따 먹으려 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칸트 또한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 그대로 머물렀더라면 결국 권태에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인인 헨리 소로도 “삶이 주는 다양성과 기쁨을 이미 맛볼 만큼 다 맛보았다는 주제넘은 생각에 늘 잠겨 있다 보면, 저절로 생겨나는 삶에 대한 싫증과 권태감은 의심의 여지없이 아담의 권태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월든, 숲 속의 삶』, 1976)라는 말로 키르케고르의 견해에 동조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니스벳은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쫓아낸 이유가 낙원에서는 끝내 피하지 못할 운명인 권태를 모면하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라르스 스벤젠, 『지루함의 철학』 참조) 삶의 권태에 대한 이러한 견해들이 등장한 것은 18세기 말 낭만주의가 태동한 이후이다. 
  중세 신학에서 게으름은 모든 죄악의 뿌리가 되는 가장 무서운 죄로 여겨졌다. 그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게으름을 수반하는 맥없이 따분한 상태를 나타내는 ‘아케디아acedia’ 또는 ‘아키디아 accidia’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어 ἀκηδί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무 것에도 마음 쓰지 않는 상태를 가리켰다. 4세기경 기독교 승려인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345~399)는 모든 악마들 중에서도 가장 교활한 한낮의 악마가 수도하는 승려를 덮쳐 마치 태양이 멈춘 듯 만사를 귀찮아하고 생기를 잃은 상태를 아케디아로 표현했다. 이어서 그는 참을성을 갖고 끈기 있게 이 아케디아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모든 죄도 극복하고 마침내 덕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르스 스벤젠, 『지루함의 철학』 참조) 

  또한 장 카시엥(360-432)도 『공동생활수도사의 교육』(420)에서, 아케디아는 속세를 떠나 수도 생활을 하는 은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권태로서 이로부터 다른 죄악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아케디아는 하느님을 멀리하고 그 창조물들을 거부하게 만들어 영겁의 지옥에 빠트린다. 단테는 『신곡』(1321경)에서 밝은 햇살을 받으면서도 즐거워하지 않고 비탄에 잠긴 자들이 벌을 받는 지옥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수렁 속에 처박혀 탄식하는 소리. 밝음 속에서,
햇살 가득한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우수에 젖었더니,
귀찮음과 언짢음의 고통이 가슴을 가득 메우는가.
이제 어둠과 수렁 속에서 슬픔에 젖어 있나니.” (단테, 『신곡』, 1321경)

  17세기에 오면 권태는 게으름, 삶에 대한 싫증 내지 혐오감과 여전히 밀접하게 연관되기는 하지만, 종교적 의미에서의 죄라기보다 성격적 결함이나 특정한 상황에 기인하는 감정으로 여겨진다. 이는 “권태는 게으름을 통해 세상에 왔다.”(『성격론』,1688)는 모럴리스트 라브뤼예르의 말이나, 작가 라 모트 우다르가 “권태는 어느 날 단조로움에서 생겨났다.”(『새로운 우화』, 1719)라고 말 한 데서 드러난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러시아)   권태를 의미하는 러시아어 ‘스쿠카 скука [scuca]’는 크게 두 가지의 어원을 가진다. ‘압박하다, 힘든 상황 속에 빠지다’라는 뜻을 가지는 교회 슬라브어 ‘스쿠치티 скучити’에서 파생되었거나, ‘고통, 아픔’을 뜻하는 ‘쿠카 кука’ (кука는 ‘슬퍼하다, 울다’를 의미하는 공통슬라브어 ‘쿠카티 кукати’에서 형성되었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통은 육체적 고통보다는 주로 정신적인 것을 의미한다. 
  주변 사물이나 환경에 대한 흥미의 부재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을 의미하는 ‘스쿠카’는 흔히 우리말로 ‘권태, 지겨움’등으로 해석되긴 하지만, ‘우울, 우수’라는 정신적 의기소침의 의미도 지닌다. 스쿠카가 가지는 ‘정신적인 의기소침’의 의미와 유사한 러시아어로는 ‘우느이니예 уныние [yninie]’와 ‘토스카 тоска[tosca]’가 있다. 
  우리말로 ‘낙담, 권태, 우울’로 번역되는 우느이니예는 ‘괴롭다, 고통 받다, 압박을 당하다’를 의미하는 고대 슬라브어 ‘오우느이티 оуныти’에서 파생되었다. 그리고 ‘우울, 우수, 권태’로 번역되는 ‘토스카’ 역시 ‘압박, 슬픔, 고통, 불안’을 의미하는 고대 러시아어 ‘트스카 тъска’에서 파생되었다. 
  위에 언급한 이 세 단어를 구분하여 우리말로 정확히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스쿠카’는 주변 사물이나 환경에 대한 흥미나 관심의 부재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정신적 괴로움을 나타내기에 주로 ‘권태’로 번역되며, ‘우느이니예’는 희망이 없는 슬픔이나 그로 인한 정신적 압박감에서 오는 ‘낙담, 우울’ 정도로 이해되곤 한다. ‘우수, 우울’로 주로 번역되는 토스카는 주로 주변 대상의 상실과 헤어짐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정신적 고통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단어의 어원이 모두 ‘고통, 슬픔, 압박, 아픔’과 연관된 단어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권태를 뜻하는 프랑스어 ‘앙뉘’가 ‘거리끼다, 미워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inodiare’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과, 권태를 의미하는 또 다른 라틴어인 ‘tædium’ 역시 ‘삶에 대한 지루함, 혐오감’을 어원으로 두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즉, 권태가 혐오감에서 유래한 서양 언어의 일반적인 현상과 달리 러시아 문화 토포스에서는 ‘정신적 고통’에서 유래가 된 것이 특징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중세 러시아에서 스쿠카는 서구의 경우와 유사하게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이를 경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되었다. 실제로, ‘권태, 나태’는 기독교의 ‘일곱 가지 대 죄악’중의 하나이다. ‘일곱 가지 대 죄악’은 성경에 실제적으로 언급된 것이 아니라, 후세의 종교지도자들이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임의로 그 항목을 규정한 것이다. 서 유럽의 가톨릭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의 죄악은 ‘음욕, 과식, 탐욕, 나태, 분노, 질투, 교만’인데, 러시아 정교에서는 일곱 가지 죄악을 ‘탐식, 음욕, 탐욕, 분노, 슬픔, 나태, 허영, 교만’등의 여덟 가지 죄악으로 확장시켰다. 특히, 러시아 정교에서는 ‘권태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유일한 죄악’ 이라는 말로 스쿠카의 죄악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18세기 러시아 사회에서도 권태는 일반인들에게 널리 수용된 개념은 아니었다. 서구화 이전의 러시아 사회는 척박한 자연 환경을 가진 낙후된 농업사회였기에 ‘권태, 지루함, 게으름’을 느낄 사회 문화적 영역이 형성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표트르 대제 이후 예카테리나 여제까지 이어지는 서구화와 계몽주의 러시아 시대 역시 낙후된 러시아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동과 근면’의 분위기를 강조하였기에 ‘권태’의 토포스는 여전히 사회적으로도 낯설 뿐만 아니라, 종교적, 도덕적으로 쉽게 용인될 수 없는 분위기였다.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프랑스)   권태를 신에 대한 불경으로 단죄한 기독교 논리를 더 전개하여 권태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완성한 사상가로 파스칼(1623-1662)을 들 수 있다. 파스칼은 무신론자의 어리석은 허영심을 비난하면서 무신론자는 권태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권태, 그것처럼 견디기 힘든 것도 없다. 정열도, 하는 일도, 오락거리도 없고 또 뭔가에 마음을 쏟아볼 기회조차 없이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다가 공허를 느끼게 된다. 쓸쓸함, 무기력함, 구속감, 답답함, 허무감을 느낀다.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권태가 스물 스물 피어오른다. 의기소침, 슬픔, 가슴 아픔, 짜증, 절망감이 밀려온다.” (파스칼, 『팡세』, 1670)

  파스칼에 의하면, 인간이 권태를 느끼는 것은 “이곳 지상에서는 참되고 영원한 만족이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심이 없다면 인간은 권태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잊게 해줄 오락거리를 찾게 된다. 그러나 오락거리는 “생각을 가로막아 자신도 모르게 파멸에 이르게 하고,” “우리를 재미에 빠트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결국에는 죽음으로 몰아간다.” 따라서 파스칼은 오락거리를 통해 권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눈앞의 현실에서 달아나는 것, 본질적인 공허와 허무를 회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파스칼은 권태를 단순히 지루함이나 단조로운 상황에서 비롯된 일시적 기분이 아닌 인간의 존재 조건으로 파악한 것이다. 

“오락거리를 없애면 사람들이 권태 때문에 시들어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허무를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공허해지는 것이다.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 못하고 꼼짝없이 자신을 직시하게 되었을 때 견딜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드는 것은 정말로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팡세』, 1670) 

  신이 없다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며, 그런 허무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권태라는 파스칼의 논리는, 권태를 피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는 사람이 오락거리로 피해 권태를 외면하는 사람에 비해 깨달음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이른다. 권태에 빠진 인간은 혼자서 자신을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는 상태, 다시 말해 허무에 내맡겨진 채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 맺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상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를 치유하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파스칼은 오락거리 대신 신에 대한 믿음을 권유했다. 신을 믿고 살아보라는 것이 파스칼이 인간에게 제안한 ‘내기’이다. 
  권태에 대한 파스칼의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 존재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공함으로써 이후의 사상가들에게, 특히 18세기 말~19세기의 독일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18세기는 이성과 과학의 발달을 토대로 인간의 무한한 진보와 문명의 발달을 믿은 계몽주의 시대였던 만큼 파스칼의 비관적 인간관이 들어설 여지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지상에서의 행복을 인간의 목표로 삼았던 계몽철학자들은 권태를 행복에 가장 해로운 정서로 여기고 배척했다. 파스칼의 인간관과 호교론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지고하신 염세주의자에 맞서서 인류의 편을 들고 나서려 한다.”
“우리를 설득시키길 원한다면 다른 방식을 택하시오. 도박이니 우연이니 내기니 동전의 앞면이니 뒷면이니 하지 마시고, 또 우리가 원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가시덤불을 덮어서 우리에게 겁을 주지도 마시오. 오묘하고도 연약한 자연의 모든 소리가 다 함께 힘차게 신이 존재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면, 당신의 논리는 무신론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적격일 것입니다.” (볼테르, 『철학서한』, 1734) 

  반면 파스칼이 인간의 존재 조건으로 본 권태의 개념은 칸트에게서 다시 나타난다. 근대사회의 권태를 문명화 과정의 산물로 본 칸트는 자연인들이 자연적 욕구와 욕구의 해소 즉 만족이 교차하는 가운데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반면, 문명 속에서 인간은 끝없이 새로운 쾌감, 새로운 종류의 경험을 갈망함으로써 오히려 권태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칸트에 따르면, 권태에는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한 혐오가 동반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예감, 그것이 일깨우는 공허감과 불안이다. 이 공허감을 막기 위해 칸트는 ‘일’을 권유한다. “인간은 쾌락이 아닌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느끼며, 게으름 속에서 사람이 느끼는 것은 오직 무기력한 권태감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 내용 없는 텅 빈 시간 앞에서 사람이 느끼는 것은 혐오감, 불쾌감, 욕지기에 불과하다. […] 놀이 따위로 그 시간이 가득 채워졌다면, 그것이 눈앞에 있는 동안은 충만하다고 느끼겠지만, 기억을 되새기다보면 텅 빈 공허만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 『윤리학 강연』, 1798년경)

  18세기 말, 낭만주의 이후 널리 확산된 이러한 실존적 권태의 개념은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조건으로서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제시된다. 
  이 시기의 젊은이들이 사로잡혀 있던 권태와 우울은 ‘근대적인 우울’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샤토브리앙의 『르네』(1802)에서 강렬하게 표출되었다. 어린 시절 누나 뤼실과 콩부르에서 보낸 2년간의 추억을 회상하는 형식의 이 작품은 별다른 줄거리 없이 심정의 강렬한 토로와 그 저변에 깔린 ‘권태’의 표출이 내용의 전부를 이루고 있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생트 뵈브는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지겨웠다.”는 샤토브리앙의 말을 인용하며, 그가 “치유될 수 없고 우울하고 이유도 없는, 표현은 대개 달콤하고 유혹적이지만 저 밑바닥에서는 야만적이고 메마른, 그리고 미덕의 실천에는 치명적인 권태, 즉 르네 병을 만들어냈고, 그 권태는 이후 세상에 퍼져나갔다.”(생트 뵈브, 『샤토브리앙』, 1860)라고 적고 있다. 르네의 권태는 절대적인 고독과 대상을 찾지 못한 열정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절대적인 고독과 자연경관이 마침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었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없이 이 지상에서 홀로,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한 나는 생의 과도한 힘에 억눌려있습니다. 어떤 때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 속에 훨훨 타는 용암이 흐르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까닭 없이 소리를 지르고, 밤이면 밤마다 꿈과 불면으로 마음이 괴로울 뿐입니다.” (샤토브리앙, 『르네』, 1802) 

  낭만주의자들에게 르네의 실존적 고뇌는 “세상의 무거운 짐을 회피하고 몽상의 볼모가 된” 의식과잉으로 비난받기보다, 비속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고고하게 몽상에 탐닉하는 고귀한 정신으로 예찬의 대상이 되었다.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인생에 대해 더 괴로워했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위대한 영혼은 비속한 영혼보다 더 많은 고통을 갖게 마련이다.” (샤토브리앙, 『르네』, 1802)

  ‘르네 병’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낼 만큼 큰 영향을 미친 르네의 권태와 우울은 그와 더불어 무한한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전파시켰다. 르네의 고뇌는 쇼펜하우어가 인간의 근본조건으로 규정한 ‘고통’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모든 욕구는 필요, 즉 결핍에서 생겨난다. 그것이 충족되면 욕구는 사라진다. 그러나 한 가지 욕구가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거부된 열 가지가 남는다. 욕망은 지속되고 욕구는 무한하지만 충족은 순간이고 그나마도 대부분 부족하게 채워지기 때문이다. […] 그것은 마치 오늘을 연명하여 삶의 고통을 내일까지 연장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지에게 베푸는 자선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818)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의지’는 소용돌이치고 있는 맹목적인 생명의 충동이다. 인간 존재의 근원에서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이 맹목적인 의지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이 고통을 애써 외면하면 권태가 덮쳐오고 이렇게 삶은 고통과 권태의 순환 속에 갇혀있다. 그 순환에서 벗어나 사물의 이데아를 정관할 수 있는 순간은 예술작품의 창작과 향수에 의해서만 주어진다. 그런데 “예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와 시간은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대부분의 민중이 아닌”, 르네처럼, 권태와 우울함에 빠져있을 시간과 영혼을 가진 소수의 고상한 사람들에게만 허용된다. 
  이러한 생각은 키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1843)에 등장하는 한 탐미주의자에게서 구현되었다. 인생의 전환기에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일탈을 일삼는 그는 감성적 향락을 추구하며 다양한 양상의 탐미적 삶을 시도한다. 그는 권태를 느낄 수 있는 선택받은 고귀한 소수 중의 하나이다. 

“다른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평민들이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권태로워하는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 귀족이다.”(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1843) 

  예술을 지향하는 낭만주의자에게서 권태가 신분으로서의 귀족이 아닌 정신적 귀족의 전유물이 되는 이유는 권태에 내포된 자기 성찰의 계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에 이처럼 정신적 귀족의 특권적인 정서로서 실존적 권태의 개념이 형성되는 것은 개인주의의 확립과 관련이 있다. 개인주의는 ‘존재하는 것은 모두 자아로 말미암은 것’(헤겔. 『미학강의』, 1835)이라는 주관주의의 속성을 띠는데, 주관주의와 권태의 관계를 헤겔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아가 자기 관점만 고집할 경우 그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릴없고 덧없어 보이고 자신의 주관성만 예외가 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다 공허하기 때문에 결국 그 주관성마저 텅 비고 공허해지며 그마저도 덧없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다른 한편 자아는 반대로 혼자 남아 제 맘대로 하고 제멋대로 즐기는 데서도 만족을 찾지 못하여 오히려 자신이 생각한 자기 자신과 어울릴 수 없는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 자아는 단단하고 꽉 찬, 근본적이고 특별한 형태로 존재하는 그런 재미를 갈망하게 된다. 그로부터 불행과 모순이 생겨난다. 영원한 진리 속으로 들어가 객관성을 추구하려는 자아는 다른 한편으로 고립과 자기로의 침잠 상태를 포기하지 않고 불만스럽고 추상적인 자기 내면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헤겔. 『미학강의』, 1835)

  파스칼은 텅 빈 자아를 신으로 채우라고 권유했지만 이제 신은 사라졌고, 새롭게 확립된 부르주아적 가치관에 따라 성취의 대상이 된 일과 부와 권력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나 비속하다. 그리고 자아는 본질상 오직 자신을 실현하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모든 의미의 원천이 된 낭만적 자아는 근대 시민사회의 단조로움과 속박과 저속함에 대해,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 일탈, 모험에 대한 욕구로 대응한다. 스탕달은 『연애론』(1822)에서 미학에 바탕을 둔 삶의 방식과 권태, 일탈, 그리고 악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권태는 모든 걸 무너트린다. 심지어 죽을 용기마저도.”
“돈 주앙의 카리스마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얌전한 권태와 요란한 권태 사이에서 그것들과 고통을 맞바꾸는 일뿐이었다. 그는 마침내 이런 자신의 슬픈 진리를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며 악에 대한 흥미만으로 주저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데 몰두했다.” (스탕달, 『연애론』, 1822) 

  현대인의 삶에 속속들이 스며든 치유될 수 없는 권태, 타협할 수 없는 현실과 자기혐오를 르네 식의 비탄과 깊은 탄식으로 표출하지 않고, 구체적인 삶과 인물로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가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이다. 특히 『마담 보바리』(1857)의 주인공 엠마를 통해 플로베르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가치관의 부재와 현실로부터의 소외로 공허해진 현대인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엠마는 소녀 시절 무분별하게 읽은 낭만적인 소설들로 인해 소설 속 허구의 세계를 현실로 간주하고 그것을 자신의 미래로 꿈꾸어왔다. 따라서 지극히 평범하고 감성이 결여된 남편 샤를과의 결혼 생활은 아무런 즐거움도 희망도 없는 지겨운 일상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시골의 생활 또한 엠마를 무겁게 압박한다. 

“이런 절망적인 권태 이후 그녀의 마음은 또 다시 텅 비었고, 똑같은 나날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의 삶은 북쪽 창밖에 없는 차갑고 어두운 창고와도 같았다. 권태가 말없는 거미처럼 그 창고 구석구석에 거미줄을 치고 있다.”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1856)

  권태에서 비롯된 현실에 대한 혐오는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 특별한 사람, 특별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엠마는 환상을 통해서만 현실을 바라봄으로써 현실을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키려 하지만, 환영이 사라지고 나면 현실은 더욱 끔찍하게 권태롭고 혐오스러워진다. 엠마 보바리에서 비롯된 ‘보바리즘’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실제 모습과 다르게 상상하는 능력”으로서 현실을 거부하고 환상 속에서만 자기를 확인하고 실현하려는 심리적 상태를 일컫는다. 
  엠마의 권태는 곧 “환기창으로 빠져나가는 구역질나는 음식 냄새”처럼 권태가 들러붙어있다고 느낀 플로베르 자신의 권태이기도 했다. 플로베르는 한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삶이,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모든 것이 지겹다”(플로베르, 『편지』, 1846)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엠마처럼 권태로 인해 파멸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권태를 예술의 근원인 동시에 삶의 강렬한 실현의 계기로 전환시키기 위해 작품을 썼다. 
  19세기 말에는 권태를 삶 전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살아내려는 극단적인 인물도 등장했다. 현실도피적이고 반자연적인 심미주의를 보여주는 『거꾸로』(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1884)의 주인공 데제셍트가 그런 경우이다. 현실에 실망할 것이 두려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킨 나머지 여행도 떠나지 않고, 남을 방문하지도 방문을 받지도 않으면서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공상에 빠져드는 그녀의 현실도피는 권태를 추구한다. 
  샤를 보들레르의 권태는 일상의 삶속에 슬며시 파고들어와 음험하게 인간을 갉아먹는 만성적이고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다. 

“그중에도 더욱 추악하고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소리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산산조각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 삼킬 것이니,

그놈이 바로 ‘권태!’- 뜻하지 않게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 물고 단두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라,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적인 독자여 - 내 동료여, 내 형제여!” (보들레르, <독자에게>)

“오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때가 되었다. 닻을 올리자!
여기 이 땅은 권태로 우리를 짓누르는구나. 오, 죽음이여 (…)
세상 끝 바닥끝까지 잠겨 보려니,
우리에게 천국인들 어떻고 지옥인들 또 어떠랴!” (보들레르, <여행>, 『악의 꽃』, 1857)

  보들레르에게서 권태는 죽음과도 같지만, 바로 그 죽음이 권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 점에서 삶 속의 죽음인 권태의 비인간적 속성이 인간 본래적 특성에 대한 깨달음을 가능케 한다는 권태의 역설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단조로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역겨운 것이다. 영원을 반영할 때에는 가장 아름답지만, 무언가 한도 끝도 없는 것, 변함이 없는 것을 가리킬 때에는 가장 역겹다. 미의 단순성을 나타내는 상징은 동그라미, 원이다. 견디기 힘든 단조로움의 상징은 시계추의 똑딱거림이다.” (시몬 베유, 1942경) 

  권태의 이러한 역설적인 속성을 현대인의 근본조건으로 보고 그 의의를 밝히려 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마르틴 하이데거이다. 하이데거는 경제교역과 과학기술과 문화산업의 발달이 인간을 흥분시키고 더욱 더 활동적으로 만든 오늘날 인간의 현존재는 더욱 무관심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한다. 현대인은 자기 소외감과 상실감에 깊이 빠져든 채 가상과 기만에 휩싸여있다. 그 결과 우리 자신이 너무나 무의미해져서, 자신을 위해 어떤 역할도, 존재의 어떤 본질적인 가능성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한다. (라르스 스벤젠, 『지루함의 철학』 참조)

“결국 깊은 권태가 현존재의 심연을 말없는 안개처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사태가 우리에게서 벌어지고 있다.” 
“권태 속에서 전체는 공허함, 무관계성 그리고 무의미성으로 전락하며, 권태 속에서는 마주치는 것이 무엇이든 무의미하고 공허해져버린다.” (하이데거,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1941) 

  하이데거의 이러한 진단과 권태에 관한 철학은 현대인을 짓누르는 권태와 폭력의 상관성을 언급한 베르나노스, 현대인의 권태와 존재와 세계의 부조리성을 탐구한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사뮈엘 베케트 등의 작품에서 그 반향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인간이 몰락해야 할 운명이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짜증, 즉 삶의 권태 때문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곰팡이로 대들보가 서서히 삭아 부스러지듯 인간성도 그러 하다. […] 이를테면 대량 살상을 일으킨 세계대전들만 봐도 그렇다. 사람 속에 들어 있는 폭력적 성향을 생생하게 보여 줄 증거일 것 같았지만 결국은 점점 커지는 무력감만 증명해 보이지 않았는가?” (베르나노스, 『시골 신부의 일기』, 1936) 

  『구토』(사르트르, 1938)의 주인공 로캉탱의 구역질은 삶의 권태로움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신체적 반응이다. 

“모든 것이 근거가 없다. 이 정원도, 이 도시도, 그리고 나 자신도. 이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은 사람의 가슴을 메스껍게 하고 모든 것이 둥둥 뜨기 시작한다.”(『구토』, 1938)

  추억도, 지식도, 친구와 동료도, 우연히 얻은 모든 것들을 차례로 내던지고 이제 자기의 존재라는 사유 불가능한 현실만을 생각하기로 한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낸 의미는 한 권의 책을 쓰는 일이었다. 자기 존재외에 외부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아내지 못하는 로캉탱의 권태는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의 권태와 다르지 않다. 

“어머니의 장례식도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고,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카뮈, 『이방인』, 1942)

  로캉탱이 삶의 부조리를 깨닫기 위해 책을 한권 쓰기로 결심했다면, 뫼르소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세계의 무관심을 친근하게 받아들인다. 존재의 이유를 갖지 못했던 뫼르소가 권태를 의식하게 되면서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을 깨고 세계의 무관심 속에 던져진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문제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난 가끔 내 방을 생각했다. 방의 한쪽 구석에서 출발해 한 바퀴를 죽 돌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할 때마다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모든 가구 모든 물건을 기억했고 물건마다 그 자세한 부분, 장식이라든가 갈라진 틈이라든가 흠집, 심지어 나무의 결이나 빛깔까지도 기억해냈다.” (카뮈, 『이방인』, 1942)

  『고도를 기다리며』(1952)에 묘사된 베케트의 기다림은 권태에 대한 말없는 저항이자, 권태를 통해 존재의 본질에 가닿으려는 갈망이다. 베케트는 어떤 결여, 즉 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한 순간, 찰나를 둘러싸고 그 주위를 원을 그리며 맴도는 행위를 통해 다가올 무엇에 의해 정의되지 않고 결코 올 리가 없는 것에 의해 정의되는 기다림, 말하자면 영원의 눈으로 보는 기다림을 보여준다. 따라서 베케트의 기다림은 역설적으로 아무 것도 없음 또는 결여를 확실하게 붙들어두기 위한 방책이 된다. 

“이 한도 끝도 없는 여기 말고 다른 곳이 있을 수 있을까?” (『고도를 기다리며』, 1952) 

  우리의 자아 외에 아무 것도 없는 내면의 세계에서 올 리 없는 어떤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권태이다. 그리고 그 권태는 삶의 약진의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유일한 출구가 된다. 

“삶은 짧다. 그러나 권태가 그것을 연장시킨다.” (쥘 르나르, 『일기』, 1906)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러시아)   러시아 문화에서 ‘권태’가 토포스로 발현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이다. 19세기 초 러시아 사회, 특히 러시아 귀족 사회에서 권태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19세기 초 러시아 사회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구 귀족 문물을 수용하여 급속도로 귀족 사회와 귀족 문화가 형성되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무도회와 살롱이 귀족들의 정신적 여흥과 여가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는 동시에 귀족들의 일상이 되면서 ‘무위도식’하는 귀족들이 생겨나게 되고 ‘무료함, 따분함’등의 정신적 권태가 자연스럽게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난’의 실패도 러시아 사회의 독특한 권태 문화 잉태의 원인이 되었다. 1812년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젊은 장교들은 프랑스 사회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사상을 체험하고, 러시아의 억압적이며 폐쇄된 정치, 사회 문화에 항거하여 ‘귀족들의 혁명’, ‘위로부터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고 당시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억압적인 전제정치가 강화되면서 젊은 귀족들은 사회, 정치적 활동에 대한 감시와 제한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좌절감과 낙담에 빠진 당대 젊은 귀족들은 사회적 현상에 대해 자연스럽게 무관심과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서,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독특한 현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때부터 러시아 사회에서는 ‘주변 사물이나 환경에 대한 흥미의 부재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인 스쿠카의 정서가 젊은 귀족들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 초, 중반 러시아 문학의 가장 특징적인 형태 중의 하나인 ‘잉여인간’이라는 독특한 문학적 형상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잉여인간은 주로 상류 귀족층에 속하면서도 관직을 회피한 채 귀족 사회와의 교류를 꺼리고, 자아실현의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소일거리를 하면서 권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당대 귀족들을 일컫는 말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들이 가지는 삶의 권태감은 앞서 언급했듯이, 데카브리스트 난 이후 억압되고 제한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자존감을 실현할 수 없는 좌절감과 무기력함이 원인이 되는 ‘잉여적 권태’의 토포스를 탄생시킨다. 실제로 ‘잉여인간’이라는 용어는 1850년에 발표된 투르게네프의 소설 『잉여인간의 일기』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지만, 잉여인간의 문학적 원형은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심 토포스로 자리매김한다. 
  잉여적 권태에 사로잡혀 있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주인공들은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1824)의 차츠키,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1830)의 오네긴,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1840)의 페초린, 게르첸의 『누구의 죄인가?』(1848)의 벨토프, 투르게네프의 『루딘』(1856)의 루딘, 『귀족의 둥지』(1859)의 라브레츠키,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1859)의 오블로모프 등이 그러한 예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러시아 귀족 청년들의 불안과 고뇌가 권태라는 도피적이며 회의적인 형태로 발현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오네긴이다. 오락과 사치를 즐기는 사교계의 신사 오네긴의 하루 일과는 점심 식사를 하면서 무도회의 초대장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낮에는 레스토랑에서, 밤에는 무도회장에서하루를 보내는 오네긴은 상류사회의 일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료함과 권태를 느끼는 동시에 주변 사회에 환멸을 느낀다. 귀족적 일상에 대한 권태는 다음의 장면에 잘 드러나 있다.

“그의 감정은 이미 식어 있었다. 사교계의 소란스러움은 그에게는
지루한 일이었다. 미녀들은 더 이상 그의 습관적인 상념의 대상이 아니었다.
불의의 사랑에도 지쳐버렸고, 친구의 우정도 싫증났다. <…….>
결투에도 칼에도 총알에도 그는 이제 흥미를 잃었다.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어야 할 그 원인은 영어로 말하면 ‘스플린’과 비슷하고,
러시아어로는 우울증. 이 병이 그를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했다.” 
(푸시킨, 『예브게니 오네긴』, 1830)
도시의 귀족적 일상에 권태를 느낀 오네긴은 시골에 사는 아저씨로부터 영지를 상속하게 되어 농지 경영에 잠시 흥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이마저 곧 환멸과 권태를 느낀다.

“이틀간은 쓸쓸한 들이나, 어두침침한 참나무 숲의 시원함,
조용한 시내의 물소리 따위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흘째부터는 숲도 언덕도 들판도 더 이상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그에게 졸음만 가져왔다. 드디어 그는 분명히 깨달았다.
도시처럼 거리나 궁전도 없고, 카드놀이, 야유회, 시 낭송 따위도 없지만,
지루하기는 시골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푸시킨, 『예브게니 오네긴』, 1830)

  오네긴에게서 나타나는 귀족 청년의 권태는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의 페초린을 통해 낭만주의적 주인공의 전형으로 보다 확장되어 나타난다. 낭만주의적 주인공이 추구하는 자유, 꿈과 환멸에 사로잡혀 있는 페초린이지만 그의 삶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권태이다. 삶에 대한 열정을 상실해 버린 그는 권태를 느끼며 세상으로부터 멀어진다. 그에게 삶은 지루한 나날의 연속이다. 사회에 대한 환멸과 욕구불만으로 어느 한곳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영원한 방랑자인 페초린인 막심 막시므이치에게 자신의 성격을 밝힌다. 

“나는 참으로 불행한 성격을 가졌소. 교육이 날 그렇게 만들었는지 신이 나를 그렇게 창조했는지 모르겠소. […] 젊었을 때 나는 부모 곁을 떠나 돈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향락을 맛보았소. 그런데 이내 지겨워졌소. 그래서 사교계로 갔소. 또 곧 지겨워졌소. 미인들과 사랑에 빠져보았지만 그녀들의 사랑은 나의 상상력과 자존심만 자극했지 가슴은 여전히 허전했소. […] 나의 인생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공허해지고 있소.” 
(레르몬토프, 『우리시대의 영웅』, 1840)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잉여인간들에게 나타나는 권태의 흥미로운 특징 중의 하나는 이들이 권태감을 없애기 위해 도박과 결투와 같은 인위적이며 극단적인 흥분거리에 집착하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파멸시키는 비극적인 결과를 종종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사교계의 여흥거리를 탐닉하며 살고 있는 오네긴은 결국에는 자신의 친구인 렌스키를 결투에서 죽이고, 타티아나에게는 사랑의 상처를 준다. 『우리시대의 영웅』에서 페초린은 옛 애인 베라와 공작의 딸 메리를 만나 이중 연애를 지속하면서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며, 결혼할 생각이 없는 메리에게 접근하여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친구인 그루시니츠키를 결투에서 죽인다. 

  이러한 ‘잉여적 권태’의 분위기는 19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면서는 또 다른 형태의 권태로 변화되기도 한다. 19세기 말부터 더욱 강화된 정부의 반동정책과 억압으로 러시아 사회는 전반적으로 침체기로 접어들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당시 프랑스에서 유입된 데카당스한 분위기는 사회 전체에 무력감과 나태함을 만연케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구 산업자본주의가 폭넓게 러시아 사회로 침투하게 되었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치관의 혼란과 현실 소외로 인한 ‘실존적 권태’가 세기말초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 팽배하게 되었다. 
  출구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무위와 권태, 좌절과 낙담의 삶을 살아가는 당대 러시아인의 일상은 체호프의 단편 소설들과 장막극에 매우 잘 드러나 있다. 체호프의 장막극의 주인공들은 ‘나는 지루하다’라는 말을 자주 내뱉곤 하는데, 특히 『갈매기』(1896)의 마샤, 『바냐 아저씨』(1898)의 옐레나, 『세자매』(1900)의 마샤가 그러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명의 여주인공들이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1857)의 주인공 엠마처럼 평범하고 속물적이며 감성이 결여된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희망도 느끼지 못하면서 권태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특히, 『바냐 아저씨』의 옐레나와 『세자매』의 마샤는 어린 나이에 남편의 지식과 지위에 매력을 느껴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속물적이고 감성이 결여된 남편과의 정신적 접점을 찾을 수 없게 되어 끝없는 권태와 우울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들의 권태로운 삶을 벗어나게 해주었던 유일한 출구는 다른 남자 (아스트로프, 베르쉬닌)와의 사랑이었지만, 결국 이들은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게 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그녀들은 어쩔 수 없는 권태롭고 우울한 삶을 계속 살게 된다. 
  체호프의 장막극에서 여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성적 교류의 부재로 인한 권태와 달리 남자 주인공들은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과 희망 없는 삶에 대한 권태 속에서 살아간다. 의사로서 10년간 매일 같이 일을 하면서 지쳐버린 『바냐 아저씨』의 아스트로프, 대학교수를 꿈꾸다가 지방 관청의 말단 공무원으로 살아가야하는 (더욱이 그 관청장과 자신의 아내가 내연관계에 있는) 『세자매』의 안드레이는 세기말초 러시아 지식인들의 권태와 절망의 대표적인 형상이라 볼 수 있다. 

“아스트로프: 우리가 알고 지낸 후 내겐 단 하루도 한가한 날이 없었어. 어떻게 늙지 않겠나? 게다가 삶 자체는 권태롭고 어리석으며 추악한데……. 하지만 웬일인지 감정은 무뎌졌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체호프, 『바냐 아저씨』, 1898)

“안드레이: 나의 현재와 미래가 희망으로 밝게 빛났던 그 때는 어디로 갔는가? 어째서 우리는 삶을 시작하자마 권태롭고 저급하며 냉담하고 게으르며 무관심하고 쓸모없이 불행해지는 걸까? ……. 그들은 오직 먹고 마시고 잠자고 그다음엔 죽어가는 거야. 다른 사람이 태어나도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잠자고 권태로 인해 멍청해지지 않으려고 그들은 추악한 거짓 소문과 보드카, 카드놀이로 자기네 삶에 변화를 주는 거지.” 
(체호프, 『세자매』, 1900) 

  19세기 초반 러시아 사회의 ‘잉여적 권태’나, 세기말초의 ‘실존적, 데카당스적 권태’는 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일시에 해소된다. 모두가 평등하며, 모두가 노동하며 행복을 누리는 유토피아 소비에트는 나태로 인한 권태나, 사회적 소외로 인한 권태가 발생할 사회적 요소들이 차단되는 사회였다. 
  그러나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다른 형태의 권태가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권태가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인 단조로움과 반복적인 삶,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전체주의적인 통제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소비에트 사회에 나타난 권태는 1920년대에 소비에트 유토피아 사회를 풍자한 ‘안티유토피아’ 장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쟈먀틴의 소설 『우리들』(1921)의 단일제국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며, 철저한 통제 속에 살아간다. 이 체제에 반항을 일으키는 여주인공 I-330이 단일제국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동기는 ‘권태’로부터 시작된다. 
  쟈마틴의 소설 『우리들』의 드라마적 변형이라고 불리는 레프 룬츠의 드라마 『진실의 도시』(1924)에서 주인공들이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완벽한 사회를 찾아 헤매다가 ‘평등의 도시’에 도착한다. 그러나 ’평등의 도시‘ 에 도착한 의사는 이 도시의 본질을 권태로 파악한다. 

“의사: 당신은 진실을 추구했죠? 이게 바로 여기 있소……. 진실이 무엇이요? 바로 권태요! 평등이란 무엇이요? 권태요……. 시간이 지나면 더 잘 알게 되겠죠. 권태, 권태, 권태!” (룬츠, 『진실의 도시』, 1924)

  미하일 불가코프의 드라마 『극락』(1934)은 주인공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23세기 모스크바 유토피아 사회인 ‘극락’에 도착하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이 조화롭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진 ‘극락’에서 여주인공 아브로라는 쟈먀틴의 여주인공 I-330처럼 극락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체재를 부정하고 반항을 일으킨다. 그녀의 체재 부정의 출발점 역시 ‘권태’이며, 그녀는 ‘지루하다, 권태롭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극락의 권력자인 그녀의 아버지는 ‘권태를 병적인 현상’으로 규정하고 ‘인간은 권태를 느낄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아브로라의 권태는 조화로운 유토피아 사회를 떠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아브로라: 나는 이 원주들이 지겨워요. 사비치도 지겨워요. 극락도 지겨워요! 나는 결코 위험이라는 것을 맛보지 못했어요. 난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라요. 함께 떠나요!” 
(불가코프, 『극락』, 1934) 

  주인공들이 느끼는 ‘권태’의 문제는 안티유토피아 장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러한 ‘권태’는 체제의 부정과 저항이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비교문화적 설명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로 ‘권태’는 어원으로 볼 때 흥미로운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권태를 뜻하는 프랑스어 ‘앙뉘’가 ‘거리끼다, 미워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inodiāre’에 어원을 두고, 권태를 의미하는 또 다른 라틴어인 ‘tædium’ 역시 ‘삶에 대한 지루함, 혐오감’을 뜻하는 것과 달리, 러시아어로 권태를 의미하는 단어들은 ‘고통, 슬픔, 압박, 아픔’과 연관된 단어에서 유래한다는 점이다. 즉, 권태가 혐오감에서 유래한 서양 언어의 일반적인 현상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정신적 고통’과 강하게 연관된다는 것이 매우 특징적인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권태’가 토포스로 강하게 발현되는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이다. 19세기 초 러시아 사회에서 권태가 강하게 발현된 직접적인 원인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 귀족 문물을 급속도로 수용하면서 귀족사회의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과, 1825년에 일어난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고 당시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억압적인 전제정치가 강화되면서 젊은 귀족들의 사회, 정치적 활동에 대한 감시와 제한이 가중되자, 그 결과 젊은 귀족들은 좌절감과 낙담에 빠져 사회적 현상에 대해 무관심과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며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소외시켰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 초, 중반 러시아 문학의 가장 특징적인 형태 중의 하나인 이른바 ‘잉여인간’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만들어냈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사회에서는 세기 내내 이어져온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느낀 좌절과 낙담에 세기말의 데카당스 한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실존적, 데카당스적 권태’가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매우 팽배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잉여적, 실존적 권태’는 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지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지만, 집단화되고 획일화된 사회주의 소비에트 사회는 또 다른 형태의 권태를 양산했다.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초 러시아 안티유토피아 문학의 주된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반면 프랑스의 경우, 가톨릭의 지배가 절대적이었던 구체제 하에서 권태는 신앙생활의 나태함을 야기하는 대죄로 여겨지는 한편 생계를 위한 활동 없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며 살아갈 수 있는 부유한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또한 파스칼의 기독교적 인간학과 17세기 이후 형성된 강한 모럴리즘의 전통 속에서 권태는 인간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인간의 존재조건에서 비롯된 기본적인 정서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서 루소, 칸트,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로 이어지는 실존주의 철학의 계보와, 샤토브리앙, 스탕달, 플로베르, 보들레르, 프루스트, 베르나노스, 베케트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가들은 권태의 현대적 양상을 묘사하고 진단하여, 권태라는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권태라는 근원적 조건을 직시함으로써만 가능한 인간성의 실현을 모색했다. 
  가톨릭의 영향이 강하고 그에 따른 가치관이 지배적인 프랑스에서는 권태가 러시아에서처럼 ‘잉여인간’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형성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러시아와 달리 19세기에 쇠락하는 귀족계층의 권태로운 무기력함을 비판하는 한편, 근면과 성실, 그것을 통해 획득한 부를 긍정적 가치로 여기는 부르주아적 가치관에 맞서 일군의 문인,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권태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의식 양태로 부각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연관 토포스 계몽; 속물; 시간; 이성; 환상;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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