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러시아 문화 토포스 비교 사전 상세보기
행복
범주명 인간과 정서
토포스명(한글) 행복
토포스명(프랑스) bonheur
토포스명(러시아) счастье
정의 1. 육체와 정신의 욕구가 충족될수록 더 행복하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프랑스)   ‘행복’을 뜻하는 프랑스어의 ‘보뇌르 bonheur’는 ‘봉 bon’과 ‘외르 heur’의 합성어인데, ‘외르’는 “점술, 행운, 운명” 따위를 뜻하는 ‘아우구리움 augurium’에서 비롯한다. “좋은” 혹은 “선한”을 의미하는 ‘bon’이 그 앞에 붙어서 결과적으로 “좋은 점괘” 또는 “좋은 운수”의 뜻으로 만들어진 어휘로 우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자세히 거슬러 오르자면, ‘아우구리움’은 애초에, “어떤 시도나 기도에 신들이 부여해 준 성장 혹은 번성”이라는 의미로 출발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언급되는 ‘성장’, ‘증가’라는 의미와 관련하여서는 ‘아우게레 augere’, ‘아욱투스 auctus’등의 어휘를 참조할 수 있는데, ‘성장하다’ 또는 ‘증가하다’의 의미이며 또 ‘만드는 자’ 혹은 ‘키워내는 자’라는 뜻의 어위 ‘아욱토르 auctor’도 그 파생의 한 결과이다. 후자는 근대 프랑스어의 ‘오퇴르 auteur/ 저자, 장본인’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어원적인 관점에서 정리하자면, ‘보뇌르’는 지속적인 축조나 건축 혹은 증가의 의미를 포함함으로써,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기쁨의 상태와는 일정하게 구분되는 것으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서구 세계에서 ‘행복’이 명사의 형태로 말해지는 것은 사실 먼 후일의 일이다. 즉, 근대로 넘어오기 전에는 그것은 단일한 개념으로 자주 지칭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지 형용사의 형태로 ‘외뢰’ 즉 ‘좋은’ 혹은 ‘행복한’ ‘흡족한’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참된 만족의 상태에 대한 성찰과 사유는 당연히 고대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잘 알려진 바, 그 첫 번째 시도는 기원전 3세기의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것이다. ‘아타락시아’로 표현되는 영혼과 육체의 평정상태야말로 그에게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복의 경지였다. “지혜롭지 않고서는 행복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한 에피쿠로스에게 행복은 일정한 수준 이상의 지적, 정신적 성취를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족과 불만족을 혹은 기쁨과 고통을 가르는 기준을 주어진 조건에 따라 밀고 당길 수 있는 영혼의 유연함을 실천할 수 있는 실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서양의 사상가들이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내보인 입장들은 크게 보아 두 갈래로 나뉜다. 스피노자, 몽테뉴, 디드로 등은 저마다의 조건을 내세우면서, 개인의 노력과 자세 혹은 그가 속한 집단의 사회적 조건에 따라 행복이 가능하다고 말함으로써 에피쿠로스의 뒤를 이은가하면 파스칼, 루소, 쇼펜하우어 그리고 프로이트 등은 각각 다른 논리로, 사람이 왜 행복해지기가 힘든가를 말하려 들었다. 
  18세기 이후 칸트는 도덕 법칙의 실천과 행복의 추구가 어쩔 수 없이 길항 관계에 놓임을 지적하였으며, 후에 오는 니체는 위의 이원적 사유의 전통이 모두 현실의 고유한 비극성에 직면하기를 회피하려는 태도라고 비판하며 그것들을 초월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행복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남긴 대표적인 서유럽 사상가들 중 몇몇을 살펴보면 우선 스피노자를 들 수 있는데, 그는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동시에 직관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정의하였다. 특유한 범신론적 입장에 뿌리를 둔 그의 행복은 쾌락이나 수동적인 기쁨과 구분되는 어떤 적극적인 즐거움과 만족의 감정이었다. 고대의 에피쿠로스학파나 스토아학파의 전통에 비교적 충실한 스피노자의 사유 안에서 행복은 결국 미덕 혹은 덕성과 긴밀히 연결되며 이성을 통한 정신의 평정상태로 이어지는 개념이었다. 
  같은 시대의 프랑스의 장세니스트 비관론자 파스칼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추구하며 이것이 인간의 모든 행동의 목적이지만 […] 그 누구도 신앙 없이는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였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일관된 호교론을 견지한다. 
  루소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독특한 진단을 전개하면서 사람들이 행복해 지기가 매우 힘든 단계에 들어와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듯하다. 언어가 미개발되고 사적 소유와 일체의 계급을 찾아볼 수 없는 원시사회의 자연 상태, 즉 가장 행복했던 인간의 단계를 잃어버린 세계에서 ‘자기애’가 아닌 ‘이기심’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자신만을 들여다보게 하는 자기애는, 우리의 참된 욕구들이 충족되기만 하면, 충족된다. 하지만 서로 비교하기를 일삼는 이기심은 결코 만족하지 않으며 만족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 감정은 타인들보다 우리 자신을 더 좋아하며 또 타인들이 자기들보다 우리들을 더 좋아할 것을 요구하는, 즉 불가능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듯 거짓된 감정에 물들어있는 세계에서 혹 어떤 개인이 진정한 미덕을 갖추고 있다면 그는 필시 외롭고 불행할 것이다. 프랑스 사상사 혹은 문학사에서 루소가 낭만주의의 효시로 거론되는 데에는 그의 이러한 세계관이 한 요건이 되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루소와 함께, 진정성을 지닌 사람은 오히려 행복해 지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근대적 의미의 ‘자아’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일치 혹은 화합하기 보다는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 개념이다.
  시대와 사상가에 따라 엇갈리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객관적이고도 엄정한 철학적 규정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최초로 언급한 자는 독일의 인식론자 칸트이다. 행복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를 판단하는 주체는 끝까지 개별자이며 또 그 판단은 끝까지 경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욕망하고 원하는 바를 정밀하고도 일관된 용어로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무엇을 먹고 싶다고 혹은 누구를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가 일주일 후에 마음이 바뀐다면, 칸트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철학적으로 유의미한 욕망의 대상들이 아니다.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의 부인할 수 없는 이러한 상대성, 주관성, 경험성(비논리성)을 프랑스인들을 포함한 오늘날의 모든 사람들은 한켠으로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적 토포스로 자리 잡는 데에는 근대 유럽의 특정한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경험은 일정하게 정치적인 것이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러시아)   행복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차스티예 счастье [chastie]’는 고대 슬라브어 *sъčęstь̓je에 기원을 두며, ‘좋다’라는 의미의 접두사 *sъ-와 ‘운명, 부분’을 의미하는 *čęstь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즉, ‘좋은 운명, 좋은 부분’을 뜻하는 ‘차스티예’는 프랑스어의 행복 ‘보뇌르 (봉 bon -좋은 + 외르 heur-점술, 행운, 운명)’와 유사한 형태로 파생되었지만, 또 다른 어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그것은 교회슬라브어인 ‘съчѧстьнъ’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인데, 이 단어는 ‘함께 참여 하는 것, 함께 관심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을 뜻하는 또 다른 러시아어로는 ‘블라고 благо’라는 단어가 있다. 고대 러시아어 ‘благъ’에서 기원된 블라고의 어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우선은 음식, 재산, 돈 등의 물질적 소유를 뜻하기도 하고, ‘빛, 번쩍임, 고귀한 것, 가치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스티예와 구별되어 블라고는 정신적, 종교적 영역에서의 ‘행복, 복, 선한 것, 좋은 것’을 의미하며, 주로 신의 은총에 의해 주어지는 행복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고대 러시아인들의 의식 속에서 행복의 개념은 정신적 가치의 추구보다는 주로 의식주의 해결과 고단한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특히, 일반 민중들에게 행복의 개념은 배불리 먹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다. 행복을 뜻하는 러시아어 ‘블라고’의 어원이 ‘음식, 돈, 소유’라는 것도 이와 연관된 현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988년 키예프 루시가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수용하면서 기독교의 영향이 강해진 중세 러시아에서 행복은 종교적인 틀 안에서 인식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행복을 세속적 행복과 종교적 행복으로 구별하여, 세속적 행복은 일시적이며 환영과도 같은 것으로 치부되었고, 종교적 행복만이 영원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즉, 중세 러시아인들의 인식 속에서 행복은 종교적 행복만이 진실하고 영원한 것이며, 이것은 신을 섬기며 신의 뜻에 따르는 생활 속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16세기말 귀족 이반 골로프가 자신의 아들들에게 유훈으로 남긴 ‘행복은 정신적 구원 속에서만 있다’라는 말은 당대인들의 행복에 대한 인식을 잘 드러내고 있는 본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행복에 대한 토포스는 러시아 근대화를 이룩한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시기에 변화하게 된다. 18세기의 예카테리나 여제는 프랑스와 서구의 이성과 합리를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를 러시아에 이식시키면서 러시아 정신문화 영역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 시기 러시아 사회에서 행복에 대한 토포스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우선은 종교적 영향을 벗어나 인간 개인의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행복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이전의 ‘블라고’와 차별을 두어 개인의 행복을 강조하는 ‘차스티예’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이다. 개인의 행복에서 중요하게 생각된 것은 관료제가 정착되면서 유행된 성공과 출세였다. 따라서 행복한 인간은 ‘성공한 인간’, ‘출세한 인간’이라는 토포스가 사회 전체에 만연되기도 했다. 
  행복의 개념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행복이 신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노력에 의해 성취 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로마노소프의 제자이자 당대 유명한 사상가이자 철학가였던 니콜라이 포포프스키는 1756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행복에 관한 수업을 개설하여 계몽주의 시절 러시아인들의 인식 속에 나타난 행복의 개념을 역설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포포프스키는 행복이라는 것은 천상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성의 도움으로 개인적인 행복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며, 지금의 세상은 인간의 운명이 신의 손에서 인간에게로 넘어온 시기라고 말하였다.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의 이성과 행위로 성취 할 수 있다는 당시 행복의 개념은 예카테리나 여제의 사상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제는 자신의 수기에서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하였다. 

“행복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그렇게 눈먼 것이 아니다. 행복은 믿음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종 개인의 성격, 품성,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더 잘 증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을 예로 들어보겠다.

첫 번째 전제 : 품성과 성격, 두 번째 전제 : 행위, 결론 : 행복이나 불행. 이러한 전제로 인한 확실한 예는 바로 표트르 3세와 나 예카테리나의 삶이다”
(갈린카, 『예카테리나 여제의 황금시대』에서 발취, 1991)

  우유부단하고 심약한 자신의 남편 표트르 3세를 몰아내고 강인한 성격과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행복을 성취한 예카테리나 여제는 교육 정책에 지대한 관심을 쏟기도 했다. 여제는 행복이라는 것은 이성을 발달시키는 교육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18세기 러시아 교육의 목적은 인간에 의한 행복의 성취에 있었다.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프랑스)   1776년, 버지니아 주 권리 장전은 제 1 조에서 “모든 사람은 천부적으로 […] 재산을 획득하고 소유함으로써 그리고 행복과 안전을 추구하고 얻음으로써 삶과 자유를 누릴 내재적 권리를 […] 갖는다.”라고 적음으로써 행복을 정치의 장으로 편입시킨다.
  미국의 경우에 비해 프랑스에서는 약 20년 늦게, 1793 년 혁명 정부의 헌법 제 1 조는 “사회의 목적은 공동의 (구성원 모두의) 행복이다”라고 못 박는다.
  행복에 대한 이러한 급격한 공론화에 대해 당시의 사회사상가 생쥐스트는 국민의회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요약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유럽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는 모든 위대한 사상가들이 남긴 성찰과 담론을 백안시하는 것으로 들릴지는 모르나, 생쥐스트의 이 말은 사실이다. 에피쿠로스에서 스피노자와 루소, 칸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하기”, “행복한 상태”에 대한 것이었으며 “행복” 자체를 겨냥하지는 않았었다. 설혹 그들이 명사로서 ‘행복’을 말했다하더라도 일반대중들에게는 낯선 개념이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토포스가 아니었었다.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이 행복의 조건과 사회적 근거,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그것의 가능한 혹은 적법한 기준과 규칙을 다시 꺼내어 갑론을박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신이 정해 준 질서와 법칙을 따라 미리 결정된 삶의 리듬에 따라 순응해 살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굳이 하나의 개념으로서의 ‘행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었다. 그 대신 사후 세계에서 그들은 ‘지복’을 누리게 되어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이 상정하기 시작한 사회는 누구나가 동등한 자격에서 참여하는 공동체였으며, 더 이상 신이 주인이 아닌 그 공동체 내에서 복수의 구성원들 사이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축적되는 ‘부’와 그 분배를 두고 일정하게 ‘계쟁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 지점에 윤리가 개입하게 되며, 개인의 덕성과 사회관계의 도덕이 논의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라면 그 누구도 저절로 평온하게 ‘행복하’기란 쉽지 않게 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웃과의 관계를 다시 규정하고 재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독립된 개념으로서의 ‘행복’은 이제 광장의 논의의 주제가 된다. 이러한 변화의 저변과 경위를 로베르 모지는 그의 주저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사상에 나타난 행복의 개념』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행복의 문제는 그 때까지는 타자에 대한 참조 없이도 고려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웃과의 만남이 행복의 추구를 하나의 도덕적 성찰로 변화시키는 순간, 문제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모지,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사상에 나타난 행복의 개념』)

  계몽주의자 철학자들은 개인과 타자 그리고 집단이라는 관계망 속에서의 가능한 행복의 개념을 논의하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행복을 최종적으로 느끼고 누리는 주체는 개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행복의 종류는 주체의 수만큼이나 많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공통된 틀 안에 묶을 수 있기는 하지만 행복을 향한 그 다양한 모든 추구들의 발현은 프랑스 문학사가 쌓은 거대한 코르퓌스 전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 삶의 모든 시도들과 노력들, 생명활동 일체의 기저에 전제된 채 추구되는 ‘행복’은 하나의 토포스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행복의 토포스는 문학 작품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스탕달 소설의 주인공들, 예컨대 쥘리앵 소렐과 파브리스 델 동고 들은 적대적인 세계 속에 놓인 자아가 어떻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예시해주는 인물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외부 세계가 관습과 종교, 도덕 등의 이름으로 자신들에게 씌워오는 굴레와 속박을 자신만의 방법과 가치체계로써 거부 혹은 모면하면서 자신의 내적 욕망이라는 본성과 자연의 정당함에 확신을 갖고 남다른 열정과 에너지를 발휘하고 분출하여 영웅적으로 목표에 도전하는 스탕달의 인물들의 이러한 영웅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스탕달 스스로 ‘베일리즘’(스탕달의 본명이 ‘앙리 베일’이었다)이라고 칭한 바 있는데, 요컨대 행복 추구의 영웅주의인 셈이다. 진정한 베일리스트라면 자신의 정열의 실현이나 예술적 도취를 위해서는 공동체의 윤리적 요구나 타자를 향한 도덕적 배려 같은 삶의 평균적 법칙 따위는 ‘범속한 관습’ 쯤으로 여기고 때로는 비웃어 넘길 줄 알아야 하며 일상의 모든 누추한 감각의 수준보다 더, 졸렬하고 궁색한 관례들의 울타리보다 더 높이 솟을 수 있어야 한다. 
  개체들의 올바른 관계 맺기의 정식화 및 법칙화에 매달렸던 계몽주의 시대의 언설들을 지나 새로운 자아의 해방을 노래하려는 낭만주의 작가들의 이러한 주관적 행복 개념은 시문학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 중 <이국적 향기>라는 소네트에는, 알려지지 않은 원시의 땅을 향해 떠나는 설렘이 녹아있는 ‘행복한’ 항구와 해변이 제시되고 있다. 

“가을의 무더운 밤 두 눈을 감고,
뜨거운 너의 가슴 냄새를 들이마시면,
단조로운 태양의 불길로 눈이 부신
행복한 해변이 눈앞에 전개되도다.”
(보들레르, 『악의 꽃』, 1857)

  행복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여 사유할 것인가, 정의는 고사하고 그것을 구성하는 조건들과 인자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행복이 결국은 가능하다고 혹은 그것은 신기루일 뿐이라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명할 것인가, 행복을 욕망하는 각각의 행위들은 어디까지 진정한 것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근대 이후의 서구의 문학은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연루되어 왔으며 프랑스 근대 문학 역시 온갖 형태와 소재로써 그것들을 자신에게 제기해 왔다. 가령, 발자크의 수많은 인물들이 자신이 처한 다양한 삶의 조건 하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와 명분으로써 종국적으로 추구했던 것 역시, 그것을 무엇이라 명하든, 개인적 주체의 행복 혹은 그것과 잇닿아 있는 어떤 충족의 상태일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방대한 소설 세계 『인간희극』은 특정한 역사적 시대와 조건 속에 놓인 개인들의 희망과 욕망을 어떤 힘과 요소들이 변질, 왜곡, 좌초시키는가에 대한 기록으로 읽을 수 있음을 작품들 중 하나의 제목 <환멸>이 시사하고 있다.
  멋지고 화려한 행복을 찾아 낭만적 환상과 헛된 희망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던 ‘엠마 보바리’의 그 철없는 추구를 끝까지 지켜본 플로베르는 급기야 다음과 같은 금언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행복을 머릿속에 떠올려서는 안 된다. 그 (있지도 않은 요망한) 것을 지어내어 인간들을 미쳐 날뛰게 만든 놈은 바로 악마이니까.” 

  매우 독특하고도 난해한 정신세계를 펼쳐 보인 바 있는 20 세기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가 “행복이란? 스스로에게 작별을 고하는 어떤 경이(驚異)”라고 정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철학자 알랭은 1925년, 죽음, 숙명, 권태, 희망, 의지 등의 다양한 삶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자신의 철학적 성찰을 적은 명상집을 출간하면서 그 제목을 『행복론』으로 결정함으로써 우리의 토포스가 얼마나 크고 넓고 근원적인가를 시사한다. 
  프랑스 감독 에티엔 샤틸리에즈 는 영화 <행복은 풀밭 위에>를 1995년에 제작함으로써 행복을 둘러싼 질문에 나름의 답변을 제시하려 든다.
  한편 교육의 영역에서도 행복은 주요한 주제로 들어서 있음이 틀림없다. 프랑스 고등교육계는 1998년 바칼로레아 철학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행복도 행복인가?”를 제시함으로써 수험생들에게 행복에 대해 인식론적 접근을 시도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온갖 형태의 다양한 발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기에 행복에 관한 가장 정직한 말은 아무래도 17 세기의 모럴리스트 라로슈푸코가 남긴 다음과 같은 냉정한 한 마디인 듯하다. 

“사람은 어느 순간에도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실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는 않다”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러시아)   종교적 행복과 이성의 행복으로 대립되었던 18세기 이전의 러시아 사회에 비해, 19세기 행복의 토포스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그것은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을 거쳐 1812년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쟁을 통해 급속도로 수입된 서구 문물의 영향으로 러시아 사회가 급속한 변화와 발전을 보였기 때문이다. 19세기 전반의 정치적 변혁 운동과 반동정치, 19세기 중후반의 급속한 산업화와 그로인한 물질 만능주의 등의 영향으로 행복의 개념은 시대와 밀접한 연관 관계 속에 놓이게 되었다.
  성공과 출세라는 행복의 조건은 19세기에도 여전히 귀족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통해 프랑스의 선진 사상을 직접 경험한 젊은 러시아 귀족들은 행복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나가기 시작한다. 특히, 이 시기 젊은 귀족들은 개인의 행복보다는 사회의 행복, 즉 좀 더 나은 러시아 사회 전체의 행복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기도 한다.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은 행복에 관한 투쟁의 문학이며, 속물적 행복과 이기적 행복에 대한 투쟁의 문학으로도 볼 수 있다. 행복에 대한 문학적 성찰은 서구 문학에서도 종종 드러나곤 하는데, 서구 문학에서 행복에 대한 투쟁은 사회에서의 개인적 성공에 관한 투쟁이며, 출세와 부에 대한 투쟁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극도로 강조된 행복과 성공에 대한 자기 성찰적 결과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발자크의 소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문학에서 행복은 무엇보다 사회의 이상에 대한 담론이며,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을 결합시키려는 토포스를 발현하고 있다. 따라서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주인공들은 조국의 운명에 매우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나은 러시아 사회의 행복이라는 이상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1824)에서 주인공인 차츠키는 후진적이며 속물적인 조국 러시아의 상황을 고발하면서 이전 세대의 행복의 기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차츠키 : 제복! 오로지 제복뿐입니다! 언젠가 그들의 과거에서 자신들의 비겁함과 분별없음을 가려주었던 화려하게 수놓인 아름다운 제복 말입니다. 행복의 길로 가려면 우리도 그 뒤를 따라야겠죠! 아내도 딸도 제복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 저도 한때는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니! 이제 그 철없는 시절로 돌아가진 않겠습니다!” 
(그리보예도프, 『지혜의 슬픔』, 1824)

  그러나 억압적인 사회분위기로 인해 사회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고, 그로인해 상실감에 빠지는 나약한 주인공들이 러시아 문학에 종종 등장한다. 이른바 ‘잉여 인간’이라 불리는 이들은 세상의 행복에 덧없음을 느끼며 행복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세상에 행복이란 없도다. 하지만 평화와 자유는 있노라.
오래 전부터 나는 아름다운 운명을 꿈꾸어오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지친 노예인 나는 도망치려고 궁리했었다.
노동과 순결한 기쁨의 먼 은둔처로.” 
(푸시킨, 『때가 왔도다, 벗이여』, 1834)

“다만 내가 다른 사람들의 불행의 원인이라면 나도 그들 못지않게 불행하다는 사실입니다. <…….> 사교계의 미녀들을 보며 사랑에 빠졌고 또 사랑도 받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직 나의 상상력과 자존심을 자극할 뿐, 마음은 늘 공허했지요.……. 독서를 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지만 학문도 역시 싫증이 났습니다. 영광이나 행복이 절대 그런 것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게 됐던 것인데, 사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란 바로 무식쟁이고 영광이란 운의 문제라서 그것을 얻기 위해 그저 좀 날렵하기만 하면 되거든요.” 
(레르몬토프, 『우리시대의 영웅』, 1840)

  행복에 대한 좌절감과 상실감에 대한 토포스는 19세기 중,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또 다른 형태로 변화된다. 한층 더 강화된 억압 정치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러시아 사회는 양극화, 물질만능주의, 매춘, 빈민, 대기 오염 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잉태하게 되었다. 따라서 당대의 행복이란 물질적 충족, 극도의 이기주의 속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했다. 19세기 중, 후반 러시아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묘사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돈은 보잘 것 없는 인물까지도 최고의 지위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 바로 그것이 나의 ‘이념’이며 거기에 그 힘이 있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미성년』, 1875)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불행위에 구축할 수 있을까? 타인의 불행위에 구축된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행복일 수 있겠는가?” (도스토옙스키, 『작가 일기』, 1858)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물질만능과 이기적인 행복을 극복하고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보다 도덕적이 행복의 기준을 제시한다. 

“타인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면서 자신만은 모든 의무를 면하려는 사람은 결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 <....> 행복이란 인생에 대한 밝은 견해와 맑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외면적인 것에 있지 않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도스토옙스키, 『작가 일기』, 1858)

“인간이 불행한 것은 다만 자기의 행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것뿐입니다. 오직! 그것을 자각한 사람은 곧 행복해집니다.” (도스토옙스키, 『악령』, 1871)

  도덕적이며 공리적인 행복의 개념은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참된 행복은 한꺼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행복은 점진적으로 증대되는 완성 속에 있기 때문이다. <...> 참다운 행복은 언제나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그것은 그림자와 같이 모든 선량한 생활의 뒤에 따르는 것이다.” (톨스토이, 『인생 독본』, 1906)

  특히, 톨스토이는 1880년대 이른바 ‘기독교적 회심’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정교 사상에 바탕을 둔 종교적, 도덕적 행복론을 설파하면서 당시 많은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만년의 톨스토이는 세속적인 삶이 주는 쾌락, 탐욕, 물질, 명예욕 등을 멀리하고 사랑, 노동, 겸손, 절제, 근면 속에 행복이 있다고 믿었으며, 자신이 몸소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면서 철저한 금욕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이러한 행위들은 이른바 ‘톨스토이즘’으로 명명되어 당시 러시아 대중들이 그의 삶을 모방하기도 하였다. 세속적 행복과 종교적 행복에 대한 톨스토이의 사상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묘사한 소설 『빛이 있는 동안에는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에서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네들은 행복이 돈과 명예와 같은 것에 있다고 믿지만 우리들은 행복은 다른 것에 있다고 믿고 있네. <....> 우리는 삶의 행복이 기쁨을 추구하는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우선적으로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 것에 있다고 믿고 있네. <..>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은 마치 수레바퀴와 수레의 축이 한 쌍을 이루어 굴러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 결과물로서 생겨난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보게 될 것이네. 

‘대체 정말 나는 누구인가? 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온 인간이 아니었던가? 행복을 내 욕정들을 채우는 것이라 여겼지만, 결국 행복을 찾지 못했어. 모두가 나처럼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만 역시 찾지 못하고 있어. 왜냐하면 모두들 악하고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로 괴로워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톨스토이, 『빛이 있는 동안에는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 1887)

  


  신의 뜻을 지키며 사랑과 노동, 근면과 절제 속에 행복이 있다는 톨스토이의 행복론은 세기말이 되면서 다소 공허한 느낌으로 흘러가게 된다. 19세기 말부터 더욱 더 강화된 정부의 반동정책과 억압, 박해로 사회는 침체기로 들어가게 되었고 세기말초의 프랑스에서 유입된 데카당스한 분위기는 인텔리겐치아를 중심으로 무력감과 나태함을 사회 전반에 침투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러시아인들에게 행복이란 자신과는 상관없는 먼 훗날에 다가올 환영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세기말 러시아 지식인들의 무력감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 체호프의 드라마에서 쉽게 발견된다. 

“베르쉬닌 : 내가 보기엔 지상의 모든 것은 변해야 하고, 이미 우리가 보는 앞에서 변하고 있습니다. 기간이 문제가 아니지만 200년, 300년 후에 마침내 천년 뒤에는 새롭고 행복한 삶이 찾아 올 겁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위해 지금 살고 있으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 한 가지에 우리 존재의 목적이 있고, 만일 원하신다면 우리의 행복도 거기에 있는 겁니다. <...> 그래서 여러분에게 입증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행복은 없다 있을 수 없으며, 있지도 않을 거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저 일하고 또 일해야 합니다. 행복, 그것은 우리의 머나먼 후손들의 몫입니다.” (체호프, 『세 자매』, 1900)
비교문화적 설명   18세기의 예카테리나 여제는 프랑스와 서구의 이성과 합리를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를 러시아에 이식시키면서 러시아의 정신문화 영역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 시기 러시아 사회에서 행복에 대한 토포스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종교적 영향을 벗어나 인간 개인의 실제적인 구체적인 행복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인의 행복은 이전의 ‘블라고’와 차별을 두어 ‘차스티예’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계몽주의 시대에 전개된 바, 개인의 행복을 둘러싼 이러한 개념적 변화는 프랑스와 러시아 양국에 있어서, 시기적인 편차를 보일 뿐 대체로 동일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전통적 카톨릭 교회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인생의 행복의 개념 자체를 분리시키려 들었듯, 러시아에서는 정교의 교리로부터 행복의 개념을 해방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다만, 양국의 경우 차이가 있다면 러시아에서는 계속되는 차르 체제의 억압적인 사회분위기로 인해 사회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는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류사의 보편적 진보의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상실감에 빠지는 나약한 주인공들이 러시아 문학에 종종 등장하며, 특히 이른바 ‘잉여 인간’이라 불리는 이들은 세상의 행복에 덧없음을 느끼며 행복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을 남기기도 하였다.
  행복에 대한 이러한 좌절감과 상실감에 대한 토포스는 19세기 중,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러시아에서는 또 다른 형태로 변화된다. 한층 더 강화된 억압 정치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러시아 사회는 양극화, 물질만능주의, 매춘, 빈민, 대기 오염 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잉태하게 되었다. 따라서 당대의 행복이란 물질적 충족, 극도의 이기주의 속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경향을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우울하게 드러낸다. 
  만약, 프랑스의 행복이 러시아의 행복의 토포스에 대해 갖는 일정한 편차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사회 역사적 문맥에서 기인하는 것일 터이다. 프랑스는 계몽주의의 실험을 러시아보다 더 본격적으로 더 깊이 있게 경험하였다. 그 결과 대혁명을 거치면서, 나와 타자 사이의, 또는 우리와 저 윗분들 사이의 사회 경제적 갈등을 몸소 겪었다. 그리고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급속한 진전을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문제로 경험하였다. 그 결과, 개인의 행복은 더 이상 개인의 태도나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사회적 조건과 결부된다는 점을 체감하였다. 
  이제 프랑스인들은 전통적 가톨릭의 담론과는 별도의 문맥, 즉 개인의 사회적 권리와 의무, 제약과 가능성 사이를 오가는 광장의 문맥 속에서 행복을 말하고 추구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행복은, 물론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일정한 정도로는, 나와 나의 운명의 문제라기보다는 나와 너 사이의 관계의 문제로 논의해야만 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연관 토포스 계몽주의; 기쁨; 돈; 선; 신앙; 웃음; 지식인;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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