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
강희안(姜希顔,1417~1464년)의 작품으로 전칭되는 대경산수인물화(大景山水人物畵)형식의 고사(故事)산수화이다. 벼슬을 사직하고 전원의 자유로운 삶을 찾아 귀향하는 도연명(陶淵明,365~427)의「귀거래사(歸去來辭)」의 내용을 그린 <귀거래도> 중에서 자녀와 노복이 문에서 기다리고 마중나오는 고향집에 배를 타고 도착하는 ‘치자후문(雉子候門)’의 장면을 다룬 고사인물화와 유사한 구도와 제재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에 서있는 인물이 어린 자녀 뿐 아니라 사방관을 쓴 노인이 함께 있어 귀거래사의 내용과 다르다. ‘치자후문’의 구성을 차용한 다른 내용의 작품인지 모티프의 일부를 조선식으로 변양한 것인지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결이 고은 비단위에 그려졌는데 두 장의 비단을 붙였기 때문에 화폭 새로선 가운데 결봉 자국이 보인다. 화면 군데군데 가로와 세로로 벗겨진 듯 박락된 흔적이 보이고 접은 자국이 남아있지만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일본식으로 장황되어 있으며, 표구시 사방으로 조금씩 잘려 나간 것 같다. 화면 어디에도 관서를 쓰거나 도인을 찍은 흔적은 없다.
근경의 키 큰 잡목 아래 화의의 핵심인 인물들이 그려져 있고 그 위로 여러 개의 봉우리로 형성된 주봉(主峯)이 배경을 이루는 절파풍의 대경산수인물화 형식의 구도로 표현되었다. 안개에 잠긴 가옥을 중경에 배치하여 원근감을 조성한 것은 초기적인 구도법을 반영하고 있으나, 원경을 시사적인 공간이 아닌 또 다른 모티프로 채워 넣은 것은 중기적 경향을 보여준다. 실루엣풍의 원목과 크고 작은 호초점(胡椒點), 흑백 콘트라스트를 유발시키고 있는 장부벽준(長斧劈峻)에 가까운 세준과 근경의 석법 등에도 절파풍이 엿보인다. 준법과 더불어 한 번의 붓질에서 방향을 여러 번 바꾸며 속필로 분방하게 구사된 산과 바위 부분의 표면 처리는 명대 후기 절파 화풍의 특징과 상통된다. 물가 바위 곁에 자생한 작은 갈대의 양태는 남송의 하규 작품에서 처음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공간 구성과 경물 배치 및 구도, 준법 및 필묵법과 수지법은 조선 초기의 전통 양식에서 중기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경향과 절충적 특징을 보인다. 이자실의 1550년 작품인 <32관음응신도>를 비롯하여 함윤덕(16세기 후반), 이흥효(1537~1593), 이경윤(1545~1611)의 산수화 및 산수인물화 양식과 유사한 점이 많아 16세기 후반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